음악을 제대로 듣는 방법 3. 분석하며 듣기
음악을 제대로 듣기 세번째 포스팅입니다. 이 시리즈는 아래와 같이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작곡가, 프로듀서를 따라서 듣기
2. 집중해서 듣기
3. 분석하며 듣기
이번편은 제대로 듣기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 "분석하며 듣기"입니다. 1편인 "작곡가, 프로듀서를 따라서 듣기"가 음악을 좀 제대로 듣고 싶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2편은 음악에 관심이 많거나 음악을 배우는 학생 정도를 위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편은 세 편 중에 가장 전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이나 직업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타겟이기 때문에 설명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1편에서는 창작자를 따라서 작품을 들어보며 그 창작자가 가진 장점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2편은 집중하고 반복해서 음악에서 많은 정보를 캐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3편은 알고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음악을 철저히 분석하며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머리 속에 확실히 라이브러리가 쌓이고 실제 곡을 만들거나 연주할 때 응용할 수 있습니다.
분석하며 듣는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을 느끼는 과정이 아닙니다. 예전에 故 신해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故 신해철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굉장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가가 음악을 분석하며 듣지 못한다는 것은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들은 음악을 듣고 그냥 좋다, 나쁘다만 따지면 되지만 음악가가 그런식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음악이 좋지않다면 "멜로디가 문제인지, 가사가 문제인지, 화성이 문제인지, 편곡이 어색한지, 녹음이나 믹싱 사운드가 좋지 않은지" 따져봐야 합니다. 대중은 사실 굉장히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다면 그냥 안좋은 음악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유희열도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적인 음악을 하려 했는데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이 함량 미달인 것이다." 이런식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대중들은 고퀄리티에 익숙합니다.
"분석하며 듣기"는 파트를 나눠서 각 파트별로 예로 들어 음악을 분석하는 과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멜로디 + 화성 분석하며 듣기
멜로디와 화성을 따로 떼어 설명할 수도 있지만, 같이 묶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묶어서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멜로디와 화성은 따로 놀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화성에서 여러 멜로디가 나올 순 있지만, 멜로디와 어울리지 않는 화성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화성분석
"화성이 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실텐데 화성은 동시에 여러음이 나는 울림(Chord)과 그 울림의 진행(Chord Progression)을 전부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초보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블로거지가 아니고 전문 블로거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화성학을 배운 사람이면 화성분석하는 것도 배웠을 겁니다. 토날음악인지 모달음악인지 KEY는 어떻게 되는지, 어떤 코드가 쓰였는지, 어떻게 진행하는지, 이런 것들을 분석합니다.
아래는 화성분석 예제입니다.
위 곡은 제가 예전에 발매했던 피아노 앨범 수록곡 <Nights without the Moon>의 앞부분입니다. 블로그에서 악보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으니 전체 악보를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이 곡은 minor이지만 Dkey 로 분석한 것과 Bm key로 분석한 것을 전부 적어두었습니다. 사실 마이너 곡을 메이저 key의 다이아토닉 코드로 분석해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메이저와 마이너를 넘나드는 곡이 많습니다.
이런식으로 화성분석을 하고, 듣고, 보고, 연주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음악만 듣고도 화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화성을 분석하려면 당연히 화성학을 배워야 합니다. 화성이 어렵게 쓰이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은 작곡가면 화성학을 굳이 안해도 되긴하지만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화성학을 기본으로 배우고 이렇게 분석하면서 공부합니다. 화성적 테크닉이 쓰인 부분이나 코드 진행등을 파악하고 써먹다 보면 조금씩 자신의 것이 됩니다.
어떤 곡을 들었을 때 코드분석이 자동으로 된다면 다른 곡에서 비슷한 코드진행이 쓰인 것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코드가 완전히 같은 곡은 순환코드에서 특히 많은데 아래는 순환코드는 아니지만 코드진행이 비슷한 곡을 큐베이스로 찍은 것입니다.
좀 유명한 곡들을 고르다보니 조금 예전 곡들이 많네요.
시크릿가든은 누구나 잘 아시는 곡일거라 생각합니다. 시크릿 가든을 제대로 화성분석 해 보고 많이 연주해 본 사람이라면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 김건모의 미련, 원더걸스의 Nobody같은 곡을 들었을 때 코드진행이 같다(완전히 같진 않고 거의 같습니다. 코드 한두개 다를 순 있는데 전체적인 흐름은 같습니다. 원곡이랑 코드가 조금 달라도 이해를 위해 거의 통일해서 입력했습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귀찮아서 대충 찍은 것이니 사운드는 논외로 합시다.)
멜로디 분석
추가로 멜로디도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멜로디가 위로 올라가는지 아래로 내려가는지 (멜로디 커브), 코드의 어떤 노트가 멜로디로 쓰이는지 (스트럭쳐톤), 코드톤이 아닌 멜로디가 어떻게 쓰이는지 (어프로치 노트), 멜로디 한 묶음의 길이는 어떻게 되는지 (멜로디 프레이즈), 멜로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동형진행) 등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댄스음악 쓰인 코드와 멜로디에서 모드(mode)를 파악하거나, 블루스 진행을 파악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리듬 분석하며 듣기
멜로디 화성과 마찬가지로 리듬도 분석하며 들으면 음악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듬은 종류가 여러가지가 있고, 리듬은 장르를 나누는 기준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기준입니다.
리듬을 분석할 때 중요한 기준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1. straight or Non-straight (shuffle 혹은 swing같은 리듬)
2, 그루브는 어떤가?(레이백 등)
3. 강세는 어떤가 (1&3 or 2&4)
4. 박자 (4/4, 6/8, 3/4, Odd meter 등)
어떤 장르인지 정확히 몰라도 위의 기준을 가지고 리듬을 분석하다보면 세분화 시켜 기억할 수 있습니다. 뉴잭스윙이나 Shuffle rock처럼 약간 변형된 장르에 대한 이해도 훨씬 용이합니다.
셔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셔플곡을 잘 연주하거나 부르거나 작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힙합하시는 분들이 이쪽을 잘 파면 다양한 리듬의 비트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이승환의 <너에게만 반응해>를 듣고, '음 셔플이군' 이라고 말해봅시다.
- 브루노 마스의 <The Lazy Song>을 듣고, '레게! 카야만!'을 외쳐보아요.
- 아이유의 <분홍신>을 듣고, '아이유님은 스윙노래도 잘 부른다.'고 외워둡시다. ㅎ
편곡 분석하며 듣기
이번엔 편곡이야기입니다. 편곡에 관해서 오해도 참 많고 편곡가가 이렇게 무시당하는 나라도 참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음악이 한편의 영화라면 가수는 주연배우입니다. 영화를 볼 때 주연배우의 연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화를 잘 보는 사람은 시나리오, 플롯, 연출, 카메라웍, 배경음악, 사운드 디자인 같은 것 까지 전부 봅니다.
가수가 노래하는 메인 멜로디 이외의 모든 악기를 구성하고 반주방법과 반주멜로디 등을 구성하는 것이 편곡입니다. 원래 전통적으로는 작곡가와 편곡가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해외쪽은 멜로디 만드는 사람, 반주파트를 만드는 사람이 전부 공동작곡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멜로디만 만들어도 작곡가라고 합니다. 반주만 만드는 사람을 편곡가라고 해서 모든 영광을 작곡가가 가져가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가장 노가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편곡쪽입니다. 진짜 음악 고수를 찾고 싶으면 편곡가를 잘 찾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입작곡해서 작곡에만 이름 올리고 편곡은 전문가한테 맡기면서 음악천재인 척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외국처럼 공동작곡으로 들어가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엑소 앨범 크레딧 보면 작곡에 막 6명씩 들어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 우리나라사람 이었으면 아마 편곡에만 올라갔을지도 모릅니다.
잡소리는 이쯤 하고 편곡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멜로디가 물론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 멜로디를 멋있게 꾸미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원래 있는 곡을 리메이크 하는 경우에 장르를 아예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수가 앨범 소개 하면서 "리메이크 하면서 이 곡을 보사노바로 바꿔봤어요." 이런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원래 멜로디는 그대로 두고 보사노바의 편곡을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편곡은 너무 광범위한 부분이라 단순하게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굳이 크게 나누자면 어쿠스틱 편곡과 일렉 편곡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앨범에 보면 (acoustic) 혹은 (unplugged) 이런식으로 똑같은 곡이 두개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원곡이 전자악기를 위주로한 편곡이면 다른 버전은 어쿠스틱 버전의 편곡이라는 뜻입니다.
어쿠스틱 음악을 편곡하려면 어쿠스틱 악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쪽이 좋습니다. 막 악기를 여러개씩 다루는 작곡가들이 괜히 그짓하는게 아니고 각 악기의 매력을 잘 파악해서 편곡에 써먹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대중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악기 구성이 포리듬(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이긴 함)인데 포리듬은 기타, 드럼, 베이스, 피아노를 말합니다. 베이스는 일렉베이스가 많이 쓰입니다. 포리듬 악기 말고도 많은 악기가 쓰입니다. 어떤 악기를 쓸지, 그 악기를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그것들이 전부 편곡의 범주안에 들기 때문에 편곡의 노가다는 장난이 아닙니다. 음악판에서는 멜로디도 잘 쓰면서 편곡까지 잘하는 사람을 위대한 작곡가로 인정합니다.
편곡에 대해 예제 곡을 하나 들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편곡이 무지하게 잘 된 예입니다.
이 곡은 패닉 4집에 수록된 <로시난테>입니다. 이 곡은 음악판의 천재중의 천재라고 하는 정재일이 편곡한 것으로 나오네요. 긱스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이적과 정재일이 같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시난테>의 편곡은 어쿠스틱 악기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전자음악에 나오는 sweep noise나 리드 소리같은 것은 당연히 안쓰이고 있습니다. 악기는 주로 기타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피아노, 드럼, 스트링, 일렉기타 FX소리도 나옵니다.
어쿠스틱 악기를 그냥 일반적인 방법들로 편곡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곡은 패닉 4집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습니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곡 중 하나라는 소리입니다. 이 곡을 처음 듣고 '옹? 보통 가요랑 뭔가 다른데?'라고 느꼈다면 싹수가 아주 파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쿠스틱 악기를 위주로 편곡을 할 때, 다른 장르의 편곡법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적 앨범은 일렉기타, 일렉 베이스를 제외하면 거의 어쿠스틱 악기가 많이 쓰이는데, 각각의 곡들이 서로 다른 느낌을 갖도록 음악에 따라 여러가지 테크닉을 사용합니다.
이 곡의 편곡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 우선 제목과 가사에 대해 잠깐 언급을 하겠습니다. 이적은 책도 많이 읽고 소설집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문학에 깊이가 있고 깊이 있는 가사를 씁니다.
이 곡의 제목은 로시난테입니다. 로시난테는 소설 「돈 키호테」에서 돈 키호테 아저씨가 타고 다니는 말의 이름입니다. 「돈 키호테」작품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겠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제 주변을 보니 대학교 졸업한 친구들도 제대로 안읽은 경우가 많더군요.
돈 키호테는 라 만차라는 마음에 사는 귀족으로 기사이야기에 너무 심취해서 약간 돌아버린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해병대 간 적도 없으면서 해병대 옷 입고 돌아다니며 스스로를 김 대령 이라 부르는 그런 사람을 생각하면 됩니다. 작품에 나오는 산초와 키호테는 서로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돈 키호테가 미친놈 같지만 이상을 좇는 사람이고 그를 말리는 산초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이 소설은 처음에는 가볍게 '돈 키호테는 미친놈이구나. 웃기네' 하면서 재밌게 읽게 됩니다. 작품을 제대로 끝까지 읽으면 타인의 이상을 비웃고 현실만 좇던 사람은 스스로를 비관하게 되고, 이상을 좇는 사람에게는 현실의 냉혹함을 일깨워 주는 슬픈 작품이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이상을 좇는 돈 키호테가 타고 다니는 말의 이름이 로시난테입니다. 로시난테는 돈 키호테를 가장 잘 돕고 의지할만한 친구이자, 때로는 자신이 다칠까봐 온 몸을 바치지는 못하는 그런 존재로 해석됩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패닉의 로시난테는 돈 키호테가 이상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을 돕는, 희망을 북돋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자 웬 뜬금없는 문학이야기를 하나 싶은 분들도 있으실텐데 다시 편곡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돈 키호테>는 어느 나라 작품인고 하니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라는 문학가가 쓴 소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스페인입니다.
이적과 정재일은 돈 키호테의 배경인 스페인의 느낌을 내기위해 스페인의 전통음악(이면서 지금도 인기가 많습니다.)인 플라멩코의 편곡을 가요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플라멩코의 편곡 특징은 나일론 기타와 기타의 라스게아도 주법, 박수 소리, 캐스터네츠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시 음악이라고도 하는데 (완전히 1대1일 대응되는 개념은 아닙니다만) 스페인 음악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악입니다. 스페인의 국민그룹 집시킹스가 이 쪽 장르를 하는 뮤지션들 중에 가장 유명합니다. 국내에는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이 쪽 음악을 좋아해서 기타 앨범을 낸 것이 있습니다.
(요런 음악입니다.)
패닉의 로시난테는 이렇게 스페인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가져와서 적절히 가요에 접목시키는 편곡을 한 것입니다. 곡 초반에 나오는 박수소리, 캐스터네츠 소리, 나일론 기타 라스게아도 주법을 들으면 확실해 집니다. 스페인 문학의 캐릭터를 가지고 쓴 가사와 스페인음악의 편곡이 아주 잘 어울어지는 좋은 편곡의 예입니다.
가사 분석하며 듣기
가사도 음악을 분석할 때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국내에서 천재소리를 듣고 정말 롱런하는 사람들을 보면 곡도 잘 쓰지만 가사도 정말 잘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사는 음악보다 직접적으로 의미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국내에서 가장 가사를 잘 쓰는 사람은 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도 있고 한국어의 맛도 잘 살리고 문학에서 쓰이는 다양한 테크닉들을 맛깔나게 잘 사용합니다. 그러면서도 영어가사 안 쓴다고 상도 받고 그럽니다. 다른 작사가들이 안쓰는 단어를 쓰면서도 노래에 잘 묻어나게 하는 능력은 가히 최고라고 하고 싶습니다.
90년대 이전의 가사가 '글'같은 느낌이 많았다면 요새는 '말', '대화'같은 느낌의 가사가 많은데 이적은 둘 다 참 잘하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 바퀴만큰 큰 귀를 지닌>같은 깊이있는 가사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의미파악이 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XX을 탁 치게 됩니다.
아래 곡은 이적이 속했던 그룹 '긱스'의 첫 앨범 수록곡입니다. 여기 긱스는 펑크, 블루스를 하던 밴드입니다. 힙합하는 긱스 아닙니다. 멤버가 아주 ㅎㄷㄷ합니다. 강호정(건반), 이상민(드럼), 정재일(베이스), 이적(리드보컬), 정원영(건반), 한상원(기타)
다들 한가닥씩 하시는 초고수들이 모인 그룹인만큼 음악이 아주 작살납니다. 특히 이 곡은 한상원 아저씨의 기타가 예술입니다.
일단 플레이를 누르시고...
이 곡은 제가 생각하기에 국내에 나온 곡 중, 가사를 정말 잘 썼다고 생각되는 곡 BEST5 안에 드는 곡입니다. 가사를 보면 사실 별 내용이 없습니다. 가사를 이해하기 전에는 '이게 뭐야'이럴 수도 있습니다. 가사를 일단 보시고 무슨 내용인지 충분히 예상해 보신 다음 아래 해설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긱스 (Gigs) - 옆집 아이
그 애의 등 뒤에는
언제나 상처가 꽃 폈죠
일부러 감추려 피할때
나는 알고 말았죠
그 애 애써 웃으며
솜사탕 사달라 졸랐죠
갈라진 목소리 떨릴때
내가 울고 말았죠
나는 왜 그 애를
나는 왜 그렇게
나는 왜 힘없이
안아주기만 했는지
그 애는 말도 없이
쓸쓸한 인사를 던진채
무거운 현관문 열고서
또 한 밤을 맞았죠
나는 왜 그 애를
나는 왜 그렇게
나는 왜 힘없이
안아주기만 했는지
나는 왜 그 애를
나는 왜 그렇게
나는 왜 힘없이
안아주기만 했는지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무슨 내용인지 이해 하셨나요? 이적이 왜 저렇게 한스럽게 울부짖고 기타가 미친듯이 광기를 보일까요?
이 곡은 옆집 아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노래한 곡입니다.
그 아이는 아동학대 (혹은 아동 성폭력)을 당하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무것도 못해주는 자신을 비관합니다. 그냥 안아주기만 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고 답답하고, 보호자가 되어야 할 어른들이 가해자가 되는 사실이 미안한 그런 심정을 노래한 곡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어린이집 구타사건을 보는 부모들의 심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미안하고, 답답하고,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그런 상황에는 문학적이고 멋있는 것이라든지 주저리주러리 설명하는 것은 안어울립니다. 그냥 소리지르고 분노하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나는 왜'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표현되는 감성과 기타 솔로에 집중해서 다시 들어보세요.
감정이입을 하면 정말로 전율이 생길만한 그런 곡입니다. 이런 곡은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가사가 좋은 곡들을 따로 모아놓거나 왜 좋은지 분석해보면 작사를 할 때 좋습니다.
사운드 분석하며 듣기
우리가 사용하는 음계는 12음계입니다. 코드는 다이아토닉 코드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정말 희안한 코드를 쓴다 해도 사실은 모달인터체인지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이미 나올만한 코드진행, 멜로디가 거의 다 나왔기 때문에 요즘 음악들은 사운드 대결을 많이 합니다. 누가 더 멋있는 사운드를 내느냐, 누가 더 남들이 낼 수 없는 사운드를 내느냐 하는 대결이 피터지게 이뤄지고 있는 곳이 요즘의 음악바닥입니다. 이승환이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사운드에 돈을 썼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저가 스피커로는 그 사운드를 제대로 재현해 낼 수 없다는 점이 참 안타깝긴 합니다.
사운드를 분석하며 들으려면 일단 모니터링 시스템이 좀 좋아야 된다는 것은 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운드 분석은 믹싱을 분석하는 것도 될 수 있고 소스를 분석하는 것도 될 수 있습니다.
일단 믹싱 관점에서부터 살펴보면 과거의 음악들은 사운드가 입체적이지가 않습니다. 과거에는 하드웨어 장비, 아날로그 장비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여러 값들을 조절하는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치만 소리가 부드럽고 서로 잘 섞인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요즘 음악들은 소리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날카롭고 디지털스러운 음악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하나의 리버브를 사용해서 센드값만 조절하는 식으로 공간감을 만드는 믹싱이 많았는데 요즘은 플러그인이다보니 리버브만 수십개씩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쪽 사운드를 선호하는지에 따라 공부해야 할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초보자들은 정답이 하나인것처럼 잘 못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에는 과거의 방식과 현재의 방식이 혼재해 있습니다. 패러렐 프로세싱 같은 테크닉은 디지털 기술이 나온 이후의 테크닉입니다. 케이블 제대로 정리 못했다고 싸대기 맞던 80~90년대의 테크닉이 아닙니다. 작곡, 편곡도 마찬가지지만 믹싱, 마스터링, 녹음 테크닉도 진짜 고급테크닉들은 인터넷에 없습니다.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물론 혼자서 해도 잘하는 분이라면 배울 필요 없겠지만 그런 분들은 어차피 이 강의도 안보시겠죠.
녹음 테크닉과 소스의 사운드도 아주 중요합니다. 소스는 어쿠스틱 악기를 녹음하느냐, 신디사이저로 소스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접근이 조금 다릅니다. 어쿠스틱 기타의 경우는 녹음 테크닉이 아주 중요하겠죠?
스틸 스트링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럼(보통 스트록이라고 말하는)테크닉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버스커버스커의 <잘할 걸>을 들어보면 기타 사운드가 아주 올드합니다. 저는 처음에 음악 듣고 80년대 앨범인 줄 알았습니다. 올드한 가사와 올드한 창법의 버스커버스커 음악과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사운드입니다. 뭐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힘이 있습니다.
이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현대적인 사운드의 기타 사운드는 지드래곤 <그새끼>같은 곡들에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사운드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화려합니다.
어느 쪽은 선호할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젊다고 생각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친구들도 음악 취향은 굉장히 올드한 친구들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90년대 음악이 다시 융성하고 버스커버스커 같은 팀이 인기를 얻는 거겠죠. 별 의미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굳이 평균을 내자면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 나이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훨씬 늦은 나이까지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끼리도 취향이 다릅니다. 올드한 것을 추구하는 UV같은 그룹(장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만)이 있고, 새롭고 앞서가는 사운드를 선호하는 EXO같은 그룹(SM의 음악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이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냐 진보냐의 논리는 음악에서도 있습니다. 한쪽만 옳고 다른쪽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을 가장 선호하게 되는데 마이클잭슨, 조용필, 이승환 같은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것을 찾는 다는 점에서 대단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비슷한 연주법이더라도 녹음방식, 믹싱에 따라 사운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당연히 음향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댄스음악 만드는 작곡가들 아니면 사운드에 크게 신경을 안썼는데 요새는 너도나도 다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러는 추세입니다. 작곡가 한명이 해야할 일은 크게 늘어나고 있고, 더불어 작곡하는 인원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작년 쯤 유행했던 덥스텝 와블베이스나, 일렉에서의 멜버른 사운드, 머스타드 스타일 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운드 쪽을 무시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쿠스틱음악을 하다가 재미가 없어서 일렉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운드에 비중을 두다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렉쪽은 뻔한 코드, 뻔한 멜로디여도 사운드가 정말 작살나면 충분히 인기를 끌고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 곡의 믹싱은 어떻다, 이 악기 소리는 어떻다. 이런식으로 사운드에 집중해서 들어봅시다.
마치며...
멜로디, 화성, 리듬, 편곡, 가사, 사운드 등의 분석에 대해서 정리를 해 봤습니다. 음악에서 캐치해야 할 정보의 양은 이처럼 엄청납니다.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100% 파악이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자신이 황금귀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경계하게 됩니다. 전문가들 중에서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내용을 죽 읽어보시면서 느끼셨겠지만 분석하며 듣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평소에 공부를 해서 많은 분석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분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음학이 아니고 음악이다." 이 말은 진짜로 학문만 하면서 음악활동이 뒷전인 사람들한테 해야 할 말이지, 감각과 감정만 앞세우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핑계댈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화성학이 싫다 하시는 분들은 안해도 됩니다. 용어를 몰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악기로 전부 카피가 가능하고 한두번 듣고 따라서 연주할 수 있으면 안해도 됩니다. 그치만 가요에 쓰이는 범위의 재즈화성학도 귀찮아서 안할 정도의 열정으로는 다른 것도 하기가 힘듭니다. 재즈화성학이 음향학, 믹싱, 편곡법, 악기론 같은 다른 부분보다 훨씬 쉽습니다.
음악은 학교다닐 때는 그냥 별로 안 중요한 과목이고, 대중에게는 취미로 시간날 때 듣는 심심풀이지만 깊게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도 엄청나게 큰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다 잘하려고 하면 힘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정해서 필요한 것들 위주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쿠스틱 음악을 할건데 신디사이저를 깊게 판다거나 믹싱 공부에 너무 몰두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일렉음악하겠다는 사람이 LFO도 모르면서 전통화성학 하고 있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택하고 집중하고 경험을 쌓고, 모자란 부분을 더 채우고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요거 쓰는데 정말 더럽게 오래 걸렸네요. ㅎㅎㅎ
#음악 듣기 #분석하며 듣기 #음악을 제대로 듣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