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아이유 소격동 감상평

오랜만에 신곡을 들고 나온 서태지의 소격동을 들어봤습니다. 조용필 앨범처럼 현대적인 락 사운드일거라 예상했는데 일렉악기가 주가 되는 음악이었네요. 서태지까가 많아서인지 처치스 표절이라는 말이 있던데 개인적으로 대답할 가치도 없는 무식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많이 안들어본 티내는 거죠. 이런 스타일의 신스팝은 널렸습니다. 한참 전에 나왔다면 모를까.

실제로 서태지컴퍼니에서도 대응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안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저는 서태지까도 빠도 아닙니다. 표절에 관대한 편도 아닙니다. 샤이니 드림걸 표절의혹 글 올렸다가 샤이니팬분들한테 별의 별 소리 다 듣기도 했습니다.

표절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원곡이 없었다면 이 곡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처치스(CHVRCHES)의 '더 마더 위 쉐어(The Mother We Share)'라는 곡 없었어도 이 곡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곡이라고 확신합니다. 음악인들 모여있는 사이트에서도 반응은 비슷합니다.

편곡스타일은 현대적인데에 비해 믹싱, 마스터링은 약간 올드한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테잎레코딩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리버브가 좀 많이 들어가 있고 편곡 스타일에 비해 소리가 입체적으로 배치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승환 앨범처럼 입체적이고 정갈한 사운드를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사운드라 좀 의외였습니다. 한동안 음압전쟁으로 음압도 세고 깔끔하다 못해서 칼처럼 날카로운 사운드를 가진 음악들이 대세였는데 다시 부드러운 음악이 대세가 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버스커 앨범이나 비긴어게인같은 추억팔이 성향의 곡들도 인기가 많은 걸 보면 역시 유행은 돌고 도나 봅니다.

서태지의 '소격동'은 최첨단 사운드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스타일에 비해 사운드가 자극적이지 않아서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도 무리가 없네요. 물론 과거의 것과 요즘 것이 혼재하는 것도 지금에야 시도할 수 있는 최첨단 사운드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전통"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과거적인 것 같지만 "현재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과거"인 것이기에 주체를 놓고 보면 굉장히 현대적인 개념입니다. 제가 괜히 대학교 교양 수업시간에나 나올만한 소리를 하고 있네요. 요새 글 쓸 일이 별로 없어서....;;

이 곡 마스터링을 맡은 에비로드 스튜디오의 마일스 쇼웰(Miles Showell)은 “개인적으로 이 곡에서 80년대 느낌의 키보드 소리가 정말 좋다"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과거에 서태지가 살았던 동네의 이야기를 하는 가사 내용에 맞춰서 어느 정도 올드한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에비로드 스튜디오 (Abbeyroad Studio : 과거에 비틀즈가 녹음했던 스튜디오로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튜디오 중에 하나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마일스 쇼웰 아저씨 얼굴 찾아보니 이렇게☜ 생겼네요. 뭐 얼굴이 딱히 상관은 없지만요.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외국 세션, 엔지니어와 같이 작업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곡은 국내 정서에 맞는 가사 내용이다보니 국내 엔지니어들과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근데 녹음, 믹싱 엔지니어는 국내일수도 있겠네요. 우리나라 엔지니어들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_-b

이 곡에 노래를 한 아이유의 보컬은 항상 느끼지만 어느 곡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빠른 곡도 잘하고 느린 곡도 잘하고 발라드, 댄스, 남미음악, 재즈음악, 일렉까지 어떤 스타일에도 보컬이 잘 녹아드는 진짜 고수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거장들이나 국내 최고수 작곡가들과 많이 작업하는 것도 있고, 돈 많은 회사에서 가장 밀어주는 보컬이다 보니 보컬 트레이너, 보컬 어레인저같은 전문가들도 고수들이 달라 붙겠죠.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진짜 뛰어나고 매력적인 보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번에 서태지도 자기가 먼저 하자고 했다던데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보컬이 잘 들리지 않는다"라는 분들이 간혹 보이는데 다른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바꿔보시기를 조심스럽게 추천합니다. 보컬이 앞으로 굉장히 튀어나오고 입체적인 사운드를 내는 일반적인 스타일의 믹싱이 아니긴 하지만 보컬이 잘 안들릴 정도는 아닙니다. 이야기가 또 사운드로 가는군요.;;

화제를 좀 바꿔서 '소격동' 앨범 자켓도 좋아보입니다. 전체적인 색감이 굉장히 예쁘면서도 곡하고 잘 어울리네요. 어느 분이 작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유명한 분이겠죠.) 다른 그림도 보고 싶어집니다.

가사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이 곡의 가사는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서태지가 살았던 소격동에 대한 그리움, 어린시절의 그리움, 멀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세월의 덧없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정치적인 내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문학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들은 그냥 그렇게 해석하면 되는데 꼭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촌스러운 짓은 기자들이 아직도 하고 있네요. 서태지 컴퍼니는 가사 내용에 대한 질문에 확답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뭐 물어볼 수는 있지만 대답은 안하는게 더 나을 수도 있죠.

이 노래를 서태지가 부른 버전으로도 나오고 추후에 다른 곡들도 공개가 된다고 하는데 나중에 나올 곡들도 기대가 됩니다.

#서태지 #아이유 #소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