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에는 카피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강의-작곡, 편곡 2023년 1월 27일

오랜만에 음악관련 잡담을 올리네요. 오늘은 카피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연주자, 가수, 작곡가 모두 카피를 많이 하면서 실력을 키웁니다. 실력 향상을 위해선 카피가 필수다. 뭐 이런 말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레슨 선생님 중에 주구장창 카피만 시키는 분들도 있구요. 과연 카피는 항상 옳은가?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음악 카피란?

음악을 듣고 그대로 구현해 보는 것을 카피라 합니다. 들리는대로 정확하게 노래, 연주, 소리로 표현(작곡) 하는 것을 모두 카피라 합니다. 카피는 과거 작곡가 들의 인터뷰에도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작곡가 중에도 카피로 실력을 키웠다는 분들이 많은데 서태지, 윤상, 김도훈, 용감한형제 같은 분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아무래도 연주자나 가수가 아니기에 작곡쪽에 좀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보통 작곡가들이 말하는 카피는 멜로디, 코드, 모든 악기 반주, 사운드까지 포함합니다.

음악 카피의 장점

음악 카피를 해보면 자신의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국내에서 많이 안하지만)예전에 노래방이나 악보 제작알바 신청하면 카피능력 테스트 하곤 했습니다.

  듣기 구현(노래, 연주, 음원제작)
S (최고)    
A V V
B   V
C    
D    

피아노 전공생이 피아노 듣기 레벨이 A라고 했을 때, 피아노 구현레벨은 보통A, B정도가 됩니다. 기타(Guitar) 연주나 컴퓨터음악처럼 다른 분야는 당연히 구현레벨이 딸리겠지요. 밴드 합주 많이 하신 분들은 본인 악기 말고 다른 악기에 대한 듣기 레벨도 올라갑니다.

만약 구현레벨이 C인데 듣기 레벨이 A인 것 같다면 본인이 제대로 못 듣고 있으면서 잘 듣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착각은 생각보다 굉장히 흔합니다.

과거 카피밴드들 음악 들어보면 제대로 카피도 못해서 다르게 들리는 경우 허다합니다. 원곡에 들리는 텐션이 안들리고 16분음표 셔플이 스트레이트로 되어 있고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본인들은 제대로 카피했다고 착각했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도 드럼 고스트노트나 베이스 슬라이드, 기타 테크닉, 텐션, 어퍼스트럭쳐, 사운드 같은 것들 과거에는 똑같이 카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지나서 들어보고 충격 먹은 적 많습니다.

음악 카피의 과정 (듣기 → 구현)

음악을 제대로 카피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듣고, 똑같이 구현하면 됩니다. 듣는 것과 구현(e.g. 연주를 정말 잘하는데 잘 못듣는 경우)하는 것 어느 한쪽만 크게 발달한 사람은 단 한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연주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들리고, 들을 수 있는 수준만큼 연주할 수 있습니다. 노래 잘하시는 분들은 다른 사람 노래의 호흡이나 성대접촉, 후두위치, 호흡도 잘 파악합니다. 노래나 연주 뿐만 아니라 작곡도, 믹싱 마스터링 같은 사운드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기

감각(감각기관을 통해) → (지식이나 언어를 이용한) 인지

'듣기'를 다시 약간만 세분화 하면 감각과 인지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감각기관에 문제가 있어서 안들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안들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모른다'에 가깝습니다. 지식이 없거나 경험이 없는 상태입니다. 메이저 코드가 1도, 장3도, 완전5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카피 경험이 없거나 잘 모르는 보이싱으로 연주됐거나 낯선 악기로 연주됐거나 여러 악기 소리가 섞여 있으면 쉽게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메이저 코드가 1도, 장3도, 완전5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메이저코드'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분들은 훨씬 더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지식이 없다고 해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본인만의 언어를 쓰거나 별명을 붙여서 인식하면 됩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과거의 재즈연주자들은 그런식으로 많이 공부했습니다. 이 과정은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부터 음악을 접한사람들에게서 더 쉽게 일어납니다.

구현(보컬, 연주)

인지 → 신체기관을 통한 연주, 노래

정확하게 인지했다고 해서 항상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근육이 훈련이 덜 됐거나 신체능력을 웃도는 경우에는 정확하게 구현할 수 없거나 구현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근육 훈련이 잘 되어있는 분들은 비교적 쉽게 한단계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연주의 카피와 작곡의 카피

베이시스트가 어떤 곡에서 베이스를 카피 하는 것과 작곡가가 다른 사람의 곡을 카피하는 과정은 비슷한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습니다.

듣기 과정 비교(연주와 작곡)

베이시스트라면 이미 베이스에 대해 음역대나 소리특성 등도 잘 알고 테크닉도 익혀 둔 상태기 때문에 본인 파트를 듣는데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베이스에 해당하는 주파수 위주로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작곡은 좀 다릅니다. 드럼, 기타, 피아노, 베이스 같은 기본 악기만 카피한다고 해도 알아야 할 지식이 너무 많습니다. 피아노에 대해 잘 알고 있어도 다른 파트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본인만의 언어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 양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을 나눠서 들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드럼(그것도 어려우니 킥, 스네어, 하이햇 따로), 그 다음은 베이스, 그 다음은 피아노 이런식으로 나눠 들어야 합니다. 모르는 악기도 많이 나오고, 모르는 테크닉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신기한 사운드가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에 지식이 없으면 엄청나게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카피를 못하는게 너무나 당연한 상황인데 안들린다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현 과정 비교(연주와 작곡)

구현과정도 양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베이시스트는 베이스만 구현하면 되지만 작곡가는 여러 악기를 모두 구현해야 합니다.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하거나 소프트웨어로 구현해야 합니다.

작곡가가 평소에 여러 악기에 대한 근육훈련이 되어 있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가끔 정재일, 하림, 김사랑 같은 괴물들이 있긴 하지만...) 악기를 직접연주하든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든 오래 걸리고 익혀야 할 것도 많습니다.

이게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역할을 나눠서 작곡팀도 많이 하는 추세고, 밴드 합주 방식으로 작곡하기도 합니다.

작곡가를 위한 효율적인 카피 방법은?

작곡에서의 카피는 들어야 할 양과 구현해야 할 양이 너무 많아서 어려운 것이지 악기 자체 레벨은 연주자들이 다루는 레벨이 대체로 더 높습니다. 작곡 실력 향상을 위한 카피라면 공부를 병행하거나 양을 줄여서 카피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카피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입니다. 드럼에 대해 기본적이 내용을 배우고 간단한 리듬도 만들어보고 어느 정도 연주도 해보고 난 후에 카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주일은 드럼만 카피하고 다음 일주일은 베이스만 카피하고 이런식으로 집중하고 양을 줄이는 것도 좋습니다. 곡에서 마음에 드는 파트만 카피할 수도 있습니다. 코드랑 멜로디만 카피할 수도 있습니다. 익숙해질수록 속도도 빨라지고 듣는 것도 정확해집니다.

카피만 하면 끝?

여기서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듣기 레벨이 높고, 구현 레벨이 높다고 해서 곡을 잘 쓰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연주자들이 작곡도 훨씬 더 잘할겁니다. 대중음악이라면 대중들이 S나 A레벨을 훨씬 더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C, D레벨이어도 순수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을 수 있습니다.

카피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모든 아이디어가 카피에서 나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소설을 많이 보고 필사 한다고 무조건 소설을 잘 쓰는게 아닌것처럼 곡을 잘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곡을 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작곡 방법을 써보고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때로는 강력한 아이디어 하나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고 동료나 돈의 힘으로 막힌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카피를 너무 많이 해서 표절까지 가게 되면 절대로 안됩니다.

[결론] 작곡 실력향상에 과연 카피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음악에는 정답이 없고 애초에 예술과 효율은 양립하기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만 나름 결론을 내려 봤습니다.

  • 카피는 본인 실력을 체크하기 위한 훌륭한 테스트다.
  • 잘 안들리는 것은 감각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곧 잘 모르는 것에 가깝다. (지식이 없든, 경험이 없든)
  • 보컬이나 악기연주 실력 향상을 위한 카피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 작곡실력을 향상을 위한 카피는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공부를 병행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다.
    (아무 배경 지식, 음악 이론, 소프트웨어 사용법도 모르고 카피하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다.)
  • 카피를 한다고 해서 작곡 실력도 정비례로 상승하진 않는다.
  • 대중음악은 음악의 수준보다 아이디어가 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경우도 많다.
  • 모든 악기 구현이 힘들면 밴드나 작곡팀도 좋은 접근이다. (돈을 쓰는 것도...)


#작곡 #카피

태그

BoniK

협업, 의뢰, 레슨 등 문의 : mail@bonik.me, open.kakao.com/me/bo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