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센스(E-sens) - 에넥도트 앨범이 화제네요.
오랜만에 음악앨범 글을 올리네요. 다른 사람 음악에 관해 가볍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분석을 해대서 '나나 잘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글을 안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도 힙합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하고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처음에 음악을 하게된 장르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 랩한다고 깝쳤던 것도 생각나고, 요새 힙합이 대세라 그런지 힙합곡들을 작업하는 일도 꽤 있어서 신곡들도 조금씩 듣고 있습니다.
작년 컨트롤 비트 사건 때 아메바를 제대로 디스하면서 힙합씬에 커다란 이슈를 일으켰던 이센스(E-sens, 본명 강민호)가 무료로 선공개 곡들을 하나둘씩 풀다가 이번에 정규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이센스의 범죄는 옹호하고 싶지 않지만 음악 활동은 쌈디의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앨범 에넥도트에 채워진 곡들은 전부 obi라는 비트메이커가 작업을 했네요. obi는 Daniel Obi Klein이라는 덴마크 작곡가인데 샤이니 태민 솔로 앨범의 'ACE' 소시 앨범에 'Check'라는 곡으로 SM가수들과 작업한 경력이 있습니다. 앨범 소개글보고 알게됐는데 해외뮤지션은 리하나(Rihanna), 제니퍼로페즈, 메쏘드 맨, 팻조, 미씨앨리엇 등과 작업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주 글로벌한 작곡가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러프한 사운드보다 깔끔한 편곡과 사운드를 좋아하는 편이기는 한데 기본 퀄리티라는 걸 감안한다면 국내 힙합씬에 들리는 곡들보다는 사운드나 편곡이 세련된 트랙이 많은 것 같네요. obi가 어떻게 이센스와 연결이 돼서 둘이 작업을 하게 됐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비트 넘기고 만게 아니라 전곡이 obi의 트랙인걸로 봐서 앨범 전체 프로듀싱에도 영향을 미쳤을텐데 외국 비트메이커라니 신기하네요. 뭐 이센스가 잘하긴 하니 같이 작업하고 싶은 작곡가들 많았을텐데 진보나 랍티미스트같은 아티스트의 곡은 수록곡 중에 없는 점이 좀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힙합, R&B는 아무래도 랩퍼, 보컬이 주인공이 되는 장르다보니 자연스레 작곡가(비트메이커)보다 랩퍼나 보컬을 위주로 감상을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랩을 포기한지 오래고 국내 힙합을 열심히 안들은지 꽤 됐습니다. 돈자랑, 차자랑 엄마카드로 스웩은 맨날하면서 음악 그 자체에서는 돈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곡들이 너무 많아서 잘 안들었는데 이센스의 앨범은 정 반대의 느낌이 나네요. 곡들은 약간 우울하고 신세한탄이 느껴지는데 음악자체로는 스웩이 가득합니다. 스웩은 제이지처럼 어렸을 때 마약팔던 동네의 농구구단주가 됐을 때 하든지 실력으로 보여줘야죠.
랩은 가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국내 앨범 중에 타블로가 가장 가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타블로는 약간 문학 기법을 많이 쓰는 편인데 이센스는 글보다는 말에 가까운 가사를 참 잘 쓰는 것 같습니다. 플로우가 워낙 좋다보니 가사에 적합하지 않은 단어들도 멋드러지게 잘 섞입니다. 앨범 수록 곡 전체의 느낌은 밝지 않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잘 전달하는 느낌이 들어 오랜만에 가사를 곱씹으며 랩을 듣는 재미를 경험했네요.
제가 최근에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했던 랩퍼는 넉살입니다. 넉살이 랩스킬로만 보면 거의 탑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어차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취향을 많이 타긴하지만 이센스 랩스킬은 솔직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치만 잘하냐 못하냐만 놓고 보면 잘하긴 진짜 잘하는 것 같습니다. 임재범이 박자가 좀 나가도 나간대로 멋있는 것처럼 이센스도 약간 그 경지에 올라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랩을 해서 멋있는게 아니고,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랩을 이용하는 느낌이 드는 곡들이 많습니다.
이센스가 현재 대마관련 건으로 복역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안좋아하는 분도 많고 음악 스타일 자체도 별로 대중적이지도 않아서 순위가 높거나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는 앨범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장르음악이나 잘만든 앨범이 대중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걸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에 앨범의 퀄리티를 논할 때 인기는 별로 중요한 척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의 작품을 논할 때 예술가의 도덕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가? 이건 예술판에서 통일이 안되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예술가의 도덕성과 작품의 수준은 가급적 별개로 보는 편입니다. 어느 한 쪽이 옳은게 아니고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대마가 불법이기에 대마를 흡입한 건 범죄이고 나쁜 짓이죠. 그치만 음악이 잘 만들어졌냐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뭐 아니라고 생각할 분들 당연히 많으실테고 이 부분은 자기 주관대로 살면 됩니다. 단, 대마라는 기준은 좀 애매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해외뮤지션들 중에 대마를 한 사람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음악에도 속지주의를 적용하는 것도 좀 이상합니다.
잡설인데 예술가들이 다른 마약류말고 특히 대마를 많이 하는 이유가 대마를 하면 집중력이 엄청나게 좋아진다고 하네요. 단순 반복으로 연습을해야하는 연주자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창작자들이 대마를 유독 많이 하죠. 저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대마를 하고 창작하는 뮤지션이야기를 접하면 도덕성이고 나발이고 예술활동 그 자체에 치트키를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긴합니다. 근데 뭐 어느정도인지는 해봤어야 알죠. ㅋㅋ
앨범이야기를 오랜만에 올렸는데 뭐 그냥 잡소리 천지네요. 아마 이 앨범 듣고 별로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많고 좋아하실 분들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좋게 들은 사람으로서 이런 면에 집중해서 들어보시라고 잠깐 소개를 좀 하자면...
일단, 룹 기반의 장르이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원래 음악에서 뭔가를 계속 돌린다는건 굉장히 신경 쓴 부분들입니다. 반복이 많은 비트이지만 굉장히 일반적인 스타일의 비트는 아닙니다. 멜로디나 화성 말고 사운드와 리듬에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힙합은 원래 랩퍼가 중심이 되는 장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랩퍼와 랩에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얼마나 잘하나 한번 들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듣는 것도 좋지만 강민호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무슨일을 겪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본다는 생각으로 들어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힙합은 모든 음악 중에서 가사의 자유도가 가장 높은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가사에 집중해서 듣다보면 못 느꼈던 재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뭐 이정도로 쓰고 포스팅을 마쳐야 겠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거 ㅋㅋㅋ
(블로그에 쓴 글은 퇴고 이런거 전혀 안하고 프리스타일 랩처럼 한번 쓰고 끝내다 보니 퀄리티가 개판입니다.그래서 안읽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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