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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학 레슨 - Lesson 0. 첫만남

강의-음악이론 2013년 2월 9일

첫인상은 5초이내에 판가름 난다고 했던가?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잠시나마 음악을 접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제대 후에 정말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한심하지만 열정이 타오르는 따끈따끈한 예비군의 의욕을 꺾어놓은 이 선생님도 어떤의미에서는 대단했던 것 같다. 내가 그런생각을 한 것은 음악을 오랫동안 열심히 하게 되면 선생님처럼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들어와요.”

여기 오기전에 주고 받은 문자에서 집이 누추하다고 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음악작업하는 사람이니 집이 반지하인 것은 이해할만하지만 바닥에는 양말과 책들이 널부러져있고 그 아래로 CD케이스가 입을 벌린 채 반쯤 숨어있었다. 천장과 구석에는 거미도 버리고 간 거미줄에 먼지가 눌러앉아 까맣게 뭉쳐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락스냄새같기도하고 밤나무냄새같기도한 이상한 냄새가 느껴졌다. 애써 고개를 돌려 둘러보았다. 작업데스크에는 듀얼모니터와 모니터스피커가 보였고 그 옆으로 88건반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듀얼모니터와 모니터 스피커, 건반만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화려한 장비는 전혀 없었다.

“장비를 많이 안쓰시나봐요?”

정말 제대로 음악하는 사람이 맞나 싶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 흔한 사운드모듈하나도 안보이니 실력도 없는 사람에게 레슨을 받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요새는 소프트악기들이 워낙 좋아서 다 팔았어요. 팔고나니 집안이 깔끔해서 좋기는 한데 가끔씩 괜히 팔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 이게 깔끔한거야?’

내가 그 때 생각했던 단어는 ‘컬쳐쇼크’라는 단어였다. 나는 애써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용어까지 떠올리고 나서야 질문을 이었다.

“그럼 전부다 VSTi로만 하시는 거에요?”

“거의 VSTi로 하고 기타나 보컬 같은건 녹음실가서 녹음해요.”

말이 끝날때마다 웃어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따라 웃었지만 실력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화성학레슨 글을 봤을 때도 딱히 그렇다할 경력은 없었던 거 같다. 그래도 레슨비가 싸서 연락했었는데 아무래도 영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부터 시작한 미디레슨비가 좀 비싸서 화성학 레슨 받을 돈이 모자른 상황이라 잘됐다 싶었는데 역시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가보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해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이 물었다.

“음악은 얼마나 하셨어요?”

“그냥 대학교 다니면서 랩한거 밖에 없어요. 좀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데 남들보다 좀 늦어서 걱정이에요.”

“아하, 랩퍼시구나. 원래 대중음악은 20대에 시작하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그리고 어렸을 때 해봤자 뭐 얼마나 빡세게 하겠어요. 악기는 다루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아뇨, 조만간 피아노를 배우려고요.”

“건반이 화성학 하기에도 좋죠. 저도 원래 기타를 쳤는데 피아노를 하고 나니 기타는 조율하는게 귀찮아서 못치겠더라구요.”

“저도 군대에서 기타를 잠깐 쳐봤는데, F코드인가? 그게 안돼서 포기했어요.”

“화성학은 F보다 훨씬 쉬우니 포기하지 마세요.”

나는 왠지 그 말이 ‘제발 딴데로 가지 마시고 저한테 계속 레슨 받으세요.’로 들려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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